옥류동천(玉流洞天)

삼각산 사기막골 청담동(淸潭洞) 쌍폭 (20140813)

천둥새 2014. 8. 14. 00:55

두타산 무릉계곡에 아름다운 쌍폭이 있다면 삼각산 사기막골 청담동(淸潭洞)에도 멋드러진 쌍폭이 있다. 두타산의 쌍폭이 두 계곡의 합수지점에서 각 계곡이 폭포를 형성하여 쌍을 이루고 있듯이 삼각산 쌍폭도 육모정고개에서 발원하는 계곡과 인수봉계곡의 합수 지점(사기막골)에서 각 계곡이 폭포를 형성하여 쌍을 이루고 있다. 규모 면에서 삼각산 사기막골 청담동(淸潭洞) 쌍폭이 두타산 무릉계곡의 그것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이지만 작아서 오히려 아름답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 문인이나 학자들이 폭포나 소를 중심으로 한 계곡에 독서당을 짓고 성리학 등 학문을 연구하며,  시문을 저술하고, 정책을 구상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은 산림(山林) 또는 산림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삼각산 정상 봉우리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아름답고 고즈넉한 쌍폭 옆에  능성구씨(綾城具氏) 18세손 독락재(獨樂齊)  구시경(具時經, 1637~1699) 선생은 독서당을 짓고 학문과 시문을 연마하였다. 독락재선생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로 이어지는 기호학파 계보상의 성리학자로 우암선생의 제자이다. 독락재선생은 선산(先山)인 이곳 서산(西山) 청담동(淸潭洞)에 청담초당(淸潭草堂)이라는 독서당을 짓고 당대 문인들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이곳은 산수와 경관이 뛰어나 율곡의 해주 석담(石潭)과 우암의 청주(괴산) 화양동(華陽洞)에 비견될 만하다. 1668년 (현종 9년) 10월 우암선생이 우의정을 사직하고 이곳을 방문하여 서산정사(西山精舍)라는 현판을 써서 걸게 하고, 청담동  (淸潭洞) 석자와 7언절구시 2수를 지었다. 이후 초당을 '서산정사'로 부르고, 우암의 시는 독서당에서 200미터 아래의 계곡 석벽에  새겼다. 우암선생 사후 1697년(숙종 23년) 4월 독락재선생은 장자 통덕랑(通德郞) 성문(聖問)으로 하여금 우암선생의 영정을 정사에 봉안토록 하였고, 후일 장자 성문은 영당을 따로 지어 우암 영정을 봉안하였으나 지금은 정자와 영당 모두 소실되었다. (능성구씨 통덕랑공 종중 서산정사지 기림돌 내용을 참조하였음)